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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법문

불기 2558년 12월 - 개창조사탄생 103회 탄생회-법화행자의 나아갈 길-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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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6,799회 작성일 19-08-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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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갑오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初善中善後善]”는 말씀처럼, 보람찬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 우리 법화행자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12월은 부처님께서 도를 통하신 성도절 12월 8일과 개창조사께서 탄생하신(103세) 12월 27일 조사 큰스님 탄생회가 있는 달입니다. 큰스님 재세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백사를 제쳐놓고 모든 권속들과 같이 12월 1일부터 12월 8일까지 단식을 하시면서 앞으로의 불사를 생각하시고 의논 하셨습니다.

 특히 종단을 개창하신 조사 큰스님께서는 만분의 1이라도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자면서 재세시에는 꼭 성도절 단식을 하셨습니다. 이 훌륭한 전통은 우리 영산법화교단에서 그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부처님이 성도하신 같은 달 27일에 큰스님께서 탄생하셨으니 이달은 매우 뜻깊은 달입니다.  우리 법화행자는 부처님께서 불도를 이루신 깊은 뜻과 조사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개창조사 큰스님께서는 늘 한국불교를 염려하시고 법화경을 광선유포하시려고 세계평화불사리탑 건립을 서원하시고 위법망구 용맹정진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거安居가 끝날 즈음에 가행정진加行精進과 용맹정진用猛精進을 합니다. 8시간 정진을 일상으로 하는 기도와 좌선,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단축하여 정진하는 것이 가행정진이며, 또한 구랍舊臘 12월 1일~8일까지 부처님께서 도통하신 성도를 기념하여 만 7주야晝夜를 장좌불와長坐不臥하거나, 좌선정진 또는 기도정진이 계속되며 한 잠도 허용되지 않는 수행을 하는데 이를 용맹정진이라 합니다. 본 종단에서도 조사 큰스님께 행해오던 전통대로 성도를 기념하여 일주일 단식을 합니다.
 
 “내가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겁에 이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닦고 익혔노라. 지금 너희들에게 부촉하노라. 너희들은 마땅히 받아가져 읽고 외워서 널리 이법을 선포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듣게 하고 알도록 할지니라.”
(금장본 촉루품 제22, p.866)
아어무량백천만억아승지겁 수습시난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금이부촉여등
我於無量百千萬億阿僧祗劫 修習是難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今以付囑汝等
여등당수지독송 광선차법 영일체중생 보득문지
汝等當受持讀誦 廣宣此法 令一切衆生 普得聞知

 상행上行등 본화의 보살에게 입멸하신 후 말법에서 법화경을 펴라는 명령을 내리신 세존께서는 이어서 불가사의한 일을 나타내시어 여러 적화迹化의 보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무량백천만억아승지라는 오랜 세월을 수행하시어 얻으신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법인 법화경을 너희들에게 부촉하니 널리 펴라고 하셨습니다.
 보살들은 이 말씀을 듣고
 “세존께서 교칙하심과 같이 마땅히 갖추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오직 세존께서는 원컨대 염려하지 마옵소서.”
(금장본 촉루품 제22, p.868)
여세존칙 당구봉행 유연세존 원불유려
如世尊勅 當具奉行 唯然世尊 願不有慮
하고 말씀대로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하고 굳게 맹세한 것 입니다. 이것을 적화의 보살에게 부촉하신 소임이라 하고, 이와 같이 본화의 보살과 적화의 보살에게 각각 부촉하신 것은 세존께서 깊은 생각이 계셨던 때문입니다. 본화의 보살에게 부촉하신 것을 별부촉別付囑이라 하고 적화의 보살에게 부촉하신 것을 총부촉總付囑이라고도 합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여러 가지 틀리는 점이 있으니 같은 법화경을 펴라는 부촉이라도 별부촉은 본문을 중심으로 한 법화경을 펴라는 명령이요, 총부촉은 적문을 중심으로 한 법화경을 펴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는 묘법연화경을 믿고 있으며 이 묘법연화경은 여러 경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묘법연화경의 본체는 어떤 것인가. 인간의 마음의 존귀함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 바로 묘법연화경을 설하신 근본 뜻입니다. 이 몸의 참다운 성질 참다운 실체가 곧 묘법연화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경의 이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경의 내용이 곧 묘법연화경인 것입니다.
 우리는 경전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경안에 나타난 인간 본래의 귀중한 성질을 인정하고 그 귀한 성질을 발휘하기위해 설하신 가르침을 우리는 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경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요. 우리의 본체를 나타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이 묘법연화경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본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의 몸의 본체를 불러내 나타나는 것이 곧 묘법연화경인데 이처럼 자신의 본체를 알려고 혼자서 생각한다고 해서 도저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설해주신 것이며, 그 가르침을 배움으로써 또 이를 굳게 믿음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성질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일이기에 이 묘법연화경에 나무라는 관사冠詞를 붙여서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르며 이를 진심으로 믿고 숭상崇尙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귀중한 가르침을 배운다 해도 자신이 그 가르침에 따라 차차 신장伸張할 고귀한 성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삼신즉일의 부처님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존귀한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묘법연화경이므로 이 묘법연화경에 이 믿음뿐이다 하고 절대적으로 귀의해야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깨달으면 무시無始이래로 지금까지 생각했던 삿된 생각 망상은 어제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이를 믿고 단 한번이라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외우면 묘법연화경을 깨닫고 여법如法하게 묘법연화경 한부를 봉독奉讀한 것이 됩니다. 열 번을 외우면 10부, 백번을 외우면 100부를 천 번을 외우면 1천부를 여법如法하게 읽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을 설하신 대로 닦는 여설수행如說修行을 하는 일승법화행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잘못된 생각은 어제의 꿈처럼 깨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 세상 뿐 아니라 전생에서부터 이미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생의 잘못된 성질이 이생까지 전해졌으므로 태어나면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무시이래로 부터의 미망迷妄입니다. 이생에 태어나서 비로소 생긴 미망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인聖人 가운데 성인이신 훌륭하고 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하면 이처럼 전생부터 쭉 계속된 미망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제 꿈처럼 흔적도 없어집니다. 이처럼 믿고 한번이라도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외우면 곧 묘법연화경의 깊은 뜻을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과 똑같이 묘법연화경의 전체를 읽는 것과 똑같아 집니다. 진심으로 나무묘법연화경을 창唱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묘법연화경의 참다운 정신을 확실히 파악하고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창하면,그 입으로 하는 말,마음으로 생각하는 생각이 일치해서 마침내 행동으로 하게 되어 모두가 한결같아집니다. 이것이야 말로 나무묘법연화경을 창하는 것입니다.

 곧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외의 다른 수행의 방법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기본基本으로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진심眞心으로 신심을 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나무묘법연화경을 창하는 것이 어떤 의미意味가 있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지 입으로만 나무묘법연화경을 창한다고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만번 창唱한다고 해도 여설수행如說修行의 마음가짐이 없이 창하는 것은 입 끝으로 외우는 나무묘법연화경이 되므로 그러한 수행은 아무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조사 큰스님의 탄생법회를 맞이하여 항상 그 서원을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법화경 광선유포와 세계평화 원돈계단 적멸보궁 법당건립에 힘을 모읍시다.
 우리 법화행자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법화경에는 매우 중요한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은 여래가 멸도한 후에 응당 일심으로 받아가져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옮겨 쓰며 설함과 같이 닦고 행하라. 있는 국토에서 만일 받아가져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옮겨 쓰고 설함과 같이 닦고 행하며, 경권의 머무른 곳이 혹은 원중園中이거나 혹은 수풀 속이거나 혹은 나무 밑이거나 혹은 승방이거나 혹은 백의白衣의 집이거나 혹은 전당이거나 혹은 산곡이거나 넓은 들일지라도 이 가운데에 다 응하여 탑을 일으키고 공양할지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마땅히 알라. 이곳이 곧 도량이니 모든 부처님이 이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며 모든 부처님이 이곳에서 법륜을 전하시며 모든 부처님이 이곳에서 열반에 드심이니라”(금장본 여래신력품 제21, p.856)
 곧 우리 법화행자는 부처님의 본뜻을 알았으니 응당 일심으로 받아 지니고 경에서 설한대로 실천해야(오종법사행: 수지 독 송 해설 서사)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을 실천하는 곳이 바로 도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골짝이나 방이나 숲속이나 언제 어디서 이건 일심으로 법화경을 실천하는 곳이 바로 법화도량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개창조사이신 큰스님의 예견으로 장흥에 그 도량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미비한 점이 있으나 우리 법화행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도량을 갖추어 나아갈 것입니다. 또한 경권이 머무른 곳에 응당 탑을 일으켜 공양하라고 하셨습니다. 법화의 법이 머무르는 곳이란 바로 우리가 법화경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법화경을 실천하는 곳이 도량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본 마음이 들어있는 법화경을 설하는 바와 같이 실천하므로 일불승의 불도에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을 실천하면 여기서 부처가 나오므로 곧 법화경을 실천하는 곳에 탑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탑은 부처님 전신과 같이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이 있고, 이와 같이 법화경을 실천하여 이루어지는 탑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사 큰스님의 유지대로 탑을 세웠고, 여기에 더하여 법화경을 실천하는 도량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일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만난 법화경 실천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영산법화사 사부대중 여러분!
 묘법연화경의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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