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가르주나 이후

1) 나가르주나 사상의 흐름
  (1) 중관파의 흐름

 중관파의 사상경향은 대체로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기 중관학파는  용수를 중심으로 아리야데바(Āryadeva 提婆, 170-270년경) 라후라(Rāhulabhadra 羅睺羅羅 羅睺羅 200-300년경) 등의 논사들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중기 중관학파에서는 청변(淸辯, 바바비베이카. 490~570) 월칭(月稱, 찬드라키르티. 600~650) 등의 논사들이 활동하던 시기로 이들은 진나의 논리학을 도입하였다. 두 학파는 불호(佛護, 붓다파리타. 470~540)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청변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스바탄트리카)와 불호계통의 주장을 이은 월칭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프라상기카)라는 분파가 이루어졌다. 후기 중관학파에서는 논리학을 받아들인 7세기의 법칭(法秤, 다르마키르티. 600~680)과 8세기경 인식론을 받아들인 쥬냐나가르바·산타라쿠시타·카말라실라·하리바드라 등이 활동하였다. 후기 중관학파는 청변의 사상계통을 잇고 있으며, 최후기에 해당하는 11~12세기에는 아티샤·프라쥬냐카라마티 등이 활동하면서 월칭의 철학이 다시 성행했다.

<중관파의 흐름>

나가르주나(용수, 150-250년경)


아리야데바(제바, 170-270년경)


라훌라바트라(라후라, 200-300년경)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스바탄트리카)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프라상기카)
바바비베카(청변, 490-570년경)            붓다파리타(불호, 470-540년경)   



샨다라켄다(적호,725-784/788년경)           찬드라키르티(월칭, 600-650년경)



카말라시라(연화계,740-795/797년경)         산티데바(적천, 650-700년경)



바이무게데이세나(해탈군, 9세기)            부라시냐카라마티(950-1030년경)



하이바트라(사자현, 9세기)                        아테이샤(982-1054년)    



 나가르주나는 반야경에 설하고 있는 공사상에 기초하여 앞에서와 같은 사상을 체계화 하였다. 그의 학파는 공관(空觀) 중관(中觀) 등으로 불리고, 따라서 나가르주나는 중관파의 시조로 불린다. 그의 학파의 기본은 전술한 바와 같이 중관이다. 또한 제1부 모두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나가르주나는 8종의 조사로 불린다. 이것은 그가 후세 대승불교 여러 가지 사상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후세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자세히 조직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래에서는 다만 중관파의 흐름에 대해서 간단히 개설하고자 한다.
 나가르주나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아리야데바를 들 수 있다. 그는 중론(中論)에 기반하여 중관파의 사상을 상키야학파 등의 제학파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서술한 백론(百論)을  저술하였다. 현재는 그 한역이 남아 있다. 또한 사백론(四百論)은 아리야데바의 주저술인데 1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주로 타학파에 대한 비판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유식파의 사상과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한역 티벳트역이 있으며 싼스크릿트의 단편도 발견된다. 이 외에도 백자론(百字論)과 몇 편의 논서가 아리야데바의 저작으로 되어있으나, 거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아리야데바의 후계자로서 라훌라바트라가 있다. 제 일부에서는 라훌라바트라를 나가르주나의 스승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전기가 명확하지 않지만 반야바라밀과 법화경을 칭송한 게송편이 그의 저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리야데바 이후에 이 계통은 일시에 침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다시 중관학파가 활발하게 된 것은 5세기경이 되어서 이다. 곧 이 무렵에 붓다팔리타(Buddhapālita 佛護불호, 470-540 년경)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중론에 대해서 주석을 썼다. 이것은 티벳트역으로만 남아 있다. 그의 입장이나 그 계통의 사람들은 뿌라상기카파(Prasaṅgika 귀류논증파)라고 부른다. 이 파의 시조는 붓다팔리타(불호)라고 생각된다. 그의 입장은 그가 쓴 주석가운데에 나타나 있다. 그의 기본 입장은 어떠한 주장을 하더라도 오류(프라상가)에 귀착한다. 철저한 오류의 지적을 통하여 존재가 공(空)하다고 하는 것을 상대에게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파에서는 이 파 자체의 주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경향은 이미 나가르주나에게 있었다고 생각된다(프라상가의 논법에 대해서 상세한 것은 앞의 Ⅱ-5 중론의 논리 뿌라상가 참조).
 이와 같은 붓다팔리타(불호)의 입장은 바바비베카(Bhāvaviveka 또한 바이야, 청변 490-570년경)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청변 당시 불교계는 용수의 중관사상과 무착의 유식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유식사상은 중인도 나란타사를 중심으로 호법의 유가유식파가 성립되었고, 이에 상대하여 남인도를 중심으로 청변의 중관학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승불교 안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두 학파의 논쟁은 교학적 특징에서 발생한 것이다.
 바바비베카(청변)의 사상경향은 공(空)이란 일상의 경험적인 영역에서는 독립적인 추론(스바탄트라), 독립적인 논증방식에 의해서 표명되었다(그러나 참된 의미의 공은 논증을 넘어선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의 입장 및 그의 계통에 속한 사람들을 스바탄트리카(자립논증파)라고 부른다.
 청변의 주장은 불호의 귀류논증법은 진리를 논증해나가는데 불충분하다고 하였다. 귀류논증법은 상대방의 입론을 파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파하는데 그치고 적극적으로 공의 진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청변은 진나(陳那)의 추론방식에 따라 주장명제, 이유명제, 실례명제의 형식을 갖춘 논증식을 받아들여 논증하려고 했다. 결국 청변은 공(空)을 밝히는데 있어서 귀류논증법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독립된 추론으로 공을 논증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청변은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고 공성은 논리적 사고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곧 승의(勝義)의 입장에서는 논리학을 부정하면서도 세속의 범위 내에서는 공성을 논리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바바비베카의 저작으로는 중론의 주석으로 되어 있는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이 있고, 또한 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과 이것에 대한 자신의 주석인 주석 중관심론주사택염(中觀心論註思擇焰)은 티벳트역이 있고,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은 한역이 있다. 그 외에 다른 몇 편의 저작으로 중관보등론(中觀寶燈論)』, 『중관의집론(中觀儀集論)』등은 문제가 많아서 동명이인으로 보고 있다.
 푸라상기카파(귀류논증파)에서는 찬드라키르티(월칭, 600-650년경)가 나타났다. 그는 남인도 사만타국 출신으로, 그의 행적은 티벳트 전승에만 남아 있다. 그는 바바비베카(淸弁 청변)의 제자와 붓다파리타(佛護)의 제자 카마라붓디로부터 나가르주나의 저작을 가르침 받았다. 이후 날란다사원에 가서 좌주(座主)가 되었다. 만년에는 남인도 콘카나지방에 가서 전도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는 중관파는 귀류논증에 의해서 공성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바바비베카(청변)를 비판하고 붓다파리타의 사상을 옹호하여 귀류논증법(歸謬論證法)의 비조로 부른다.  
 찬드라키르티(월칭)는 중론」에 대해서 주석한 푸라산나빠다(prasannapada)를 저술해서 붓다팔리타의 입장을 세우고 바이비베카(청변)의 논증법을 비판하였다. 이 저서에서는 ‘연기’의 어의를 “사물이 원인과 조건을 기다려, 즉 의존하여(apeksya) 일어난다”고 해석하여 청변의 논증법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주석은 중론에 대한 주석가운데 유일의 현존하는 산스크리트 주석이다. 또한 그는 입중론(중관에의 입문(中觀への入門)을 저술했으나 이것은 티벳트역 만이 남아 있다. 그밖에도 몇 편이 월칭의 저술가운데 티벳트역으로 남아 있다.  월칭은 자신들의 전제를 세우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논증이 오류임을 증명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전혀 없다는 철저한 공성을 지지했다.
 월칭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중론의 주석서인 명구론(明句論)이 있다. 그 외에도 보살유가행사백론주소(菩薩瑜伽行四百論註疏), 입중론(入中論), 오온론(五蘊論) 등의 저술이 있다. 그는 사백론·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에 주석을 달았는데, 제바(提婆)의 사백론을 주석한 것이 보살유가행사백론주소(菩薩瑜伽行四百論註疏)이다. 또한 입중론에서는 십지경(十地經)의 십지를 따라 논의 골격을 세우고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저술에서는 불호의 입장을 크게 선양하고 유식 비판 등 철학적 논의가 풍부하다.
 그 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나타났던 산티데바(적천 650-700)도 귀류논증파에 포함하고 있다. 그는 유명한 입보리행론(깨달음의 수행에 들어가는 입문)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대승불교의 구도자로써 봉사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읊은 일종의 서정시 이다. 이외에도 경전을 많이 인용하고  여기에 말하고 있는 형태로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중요성을 설한 학집론(學集論)(학도의 집성), 그리고 이것에 깊이 관계하고 있는 경집론(經集論)(제경론의 집성)이 그의 저작이다. 이 입보리행론에 대해서는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나타나는 프라즈냐카라마티(prajñākaramati 智作慧, 950-1030)가  적천의 입보리행론에 대해서 주석서인 판지카를 저술하였다. 이 저술의 내용은 제불보살이 함께 행하는 길이며, 일체 안락함을 얻는 인(因)이 되며, 일체중생 선근공덕(善根功德)의 근원이 됨을 밝혔다.
 또한 티벳트불교를 부흥시겼던 아티사(Atisa, 980-1052)도 이 파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푸라상기카파(귀류논증파)는 티벳트 불교에서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한편 바이비베카(청변)의 계통에 있는 스바탄트리카(자립논증파)는 산드라케시타(Śāntaraksita, 적호 680-740)와 그의 제자로 알려진 카마라실라(Kamaraśīla 연화계, 700-750년경/797년경)(이 두 사람은 티벳트에 인도불교를 도입했다)를 더한다. 적호(寂護)는 진리강요(眞理綱要)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이 있다. 연화계(年華戒)는 산드라케시타의 저작에 주석을 한 것이며, 불교수행의 강요서로는 수습차제(修習次第)가 있다.
 또한 요가차라파의 시조인 마이트레아(미륵 270-350년경)의 저작인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을 반야경 대품반야경에 의해서 주석한 비무크티세나(Vimuktisena 해탈군, 9세기), 이보다도 조금 늦은 같은 현관장엄론을 팔천송반야에 의해서 주해했던 하리바트라(Haribhadra 사자현, 9세기), 등을 다시 이 스바탄트리카파에 포함시킨다.